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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푸른 옷 The Whole Blue Clothings in World _ Inmun 360° Magazine, May 2016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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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매거진 <인문 Inmun 360°> 2016년 5월호에 쓴 글입니다. 제목과 내용을 편집하기 전, 원본입니다.

I wrote this article that named 'The Whole Blue Clothings in World 세상의 모든 푸른 옷' that contributed to <Inmun 360°> magazine's May 2016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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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mun 360°
May 2016 issue

'세상의 모든 푸른 옷 The Whole Blue Clothings in World'

블루 blue,즉 파랑을 뜻하는 단어만큼 다양한 심상을 담은 색이 있을까? 그저 하나의 단어였던 색은 세월이 흐르면서 다양하게 변해왔다. 점점 더 문화적 형상으로 색을 바라보게 된 직업적 관찰도 한몫했을 것이다.

파란색 하면 떠오르는 불멸의 청춘은 제임스 딘 James Dean이다. 그는 1954년 연기자로 데뷔하였고, <에덴의 동쪽 East of Eden, 1955>, <이유 없는 반항 Rebel Without a Cause, 1955>, <자이언트 Giant, 1956>까지 총 세 작품에 출연하고 자신의 포르쉐 550 스파이더를 몰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가 그려낸 우울하면서도 섬세한 청춘은 당시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하얀 티셔츠와 리젠트 헤어, 가죽점퍼와 청바지 차림은 시대를 넘어 '반항하는 청춘'의 상징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그의 푸른 청바지는 ‘패션’이 상징하는 파란색 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이미지로 남았다. 혹자는 제임스 딘을 ‘청바지를 패션으로 끌어 올린 인물’로 칭하는데, 많은 이가 동의할 것이다. 내가 처음 파란색을 패션으로 자각한 것 역시 초등학교 6학년,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 Levi’s의 TV 광고였다. 

내리쬐는 햇볕 아래, 갈색으로 그을린 사내가 저 멀리서 걸어온다. 카우보이모자가 어울리고 말보로 레드를 필 듯한 백인 청년이다. 남자는 적어도 몇 년은 빨지 않은 듯한 거칠고 낡은 청바지를 입었다. ‘풀리지 않는 신비, 리바이스’라는 성우 목소리와 함께 그는 황량한 사막 국도 한가운데서 어딘가로 향한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청바지가 원래 광부들의 작업복에서 출발한 의복이라든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베이비 붐 세대와 제임스 딘을 필두로 한 ‘반항’의 상징으로 존재했다는 걸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그 신비한 장면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다. 무의식중에 청바지의 푸른 이미지는 아직 경험하지 못했던 ‘청춘’과 연결되었다. 

진하고 거친 파란색이 뇌리에 박힌 이후, 다시 패션과 연결된 지점은 1990년대의 케이트 모스 Kate Moss가 모델로 선 캘빈 클라인 Calvin Klein 광고였다. 청바지가 반전 反戰 문화와 히피 시대를 주름 잡긴 했지만, 고급 기성복 문화에 편입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벽을 허문 것이 바로 미국 패션 디자이너 캘빈 클라인이었다.

캘빈 클라인은 196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미국 패션계의 한 축을 차지하는 디자이너 브랜드로, 고급 기성복부터 속옷에 이르기까지 미국 현대 패션의 ‘정신’을 만든 디자이너로 널리 알려졌다. ‘Calvin Klein’ 로고를 넣어 골반을 드러낸 남성용 브리프 brief는 흔한 속옷을 관능의 영역으로 확장했다. 특히 캘빈 클라인 청바지는 리바이스 세대를 상징하는 젊음과는 정 반대 코드를 담았다. 

영국 여성 사진가 코린 데이 Corinne Day가 어린 소녀 케이트 모스 Kate Moss를 피사체로 담은 이래, 케이트 모스가 출연한 캘빈 클라인 청바지 Calvin Klein Jeans광고는 일약 1990년대를 상징하는 파란 波瀾이 되었다. 신디 크로퍼드 Cindy Crawford와 클라우디아 시퍼 Claudia Schiffer가 대표하는 건강하고 풍염한 모델들과 달리, 흑백 사진 청바지 광고 속 케이트 모스는 퀭한 눈빛과 비쩍 마른 몸매, 풀어헤친 머리카락으로 ‘헤로인 시크 heroin chic’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기존 파란색이 상징하던 젊음에 퇴폐미를 주입한 ‘사건’이었다. 

실제로 캘빈 클라인 청바지는 1970년대에 이미 세상에 나왔지만, 케이트 모스가 등장한 캠페인이 워낙 강렬한 탓에 ‘캘빈 클라인’ 하면 1990년대가 떠오르게 되었다(재밌는 사실은, 현재 배우로 성공한 마크 월버그가 당시 케이트 모스의 상대역 모델이었다는 점이다!). 이후 케이트 모스는 마약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켜 데뷔 이후 지속한 광고에서 하차했고, 코린 데이 역시 2010년 뇌종양으로 길지 않은 생을 마감했다. 여전히 케이트 모스는 20세기부터 21세기를 잇는 스타일 아이콘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만, 캘빈 클라인이 창조한 퇴폐적인 파란색은 2000년대 프리미엄 청바지 premium jeans의 부흥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에 묻혔다(2017년 현재, 라프 시몬스 Raf Simons를 최고 창조 책임자 Chief Creative Officer·CCO로 영입한 캘빈 클라인은 다시금 90년대의 부흥을 바라보고 있다).

이후 십수 년이 흐르는 동안, 패션이 ‘새로운 검정new black’으로 외치는 색을 수없이 봤다. 흰색과 주황색부터 남색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색이 새로운 유행의 정점에 섰노라고 수많은 매체와 패션 디자이너가 외쳤다. 파란색은 그 속에서 조금씩 빛을 발했지만, 제임스 딘 시절이나 케이트 모스 시절의 아름다움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워낙 강렬한 이미지와 함께 젊음의 상징으로 각인되었던 파란색이 다시 돌아온 것은 역설적으로도 앞선 시대와 180도 다른 ‘로열 블루 royal blue’였다. 현재 영국 왕세자비이자 애칭 ‘케이트 미들턴 Kate Middleton’으로 더 유명한 캐서린 엘리자베스 미들턴 Catherine Elizabeth Middleton이 바로 파란색을 다시 고고한 영역에 올린 주인공이다. 

불행하게 세상을 떠난 고 다이애나 스펜서와 찰스 왕세자의 장남이자,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의 장손자 윌리엄 왕세손과 결혼하여 현재 영국 국민의 사랑(과 질투 약간)을 한몸에 받은 캐서린 미들턴은 유독 공식 행사에서 푸른 옷을 즐겨 입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어느 영국 잡지의 분석 결과, 공식 행사에 참여한 캐서린 미들턴 왕세자비 옷차림의 21%가 로열 블루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영국 왕실에 오랜만에 나타난 평민 출신 왕세자비에 지대한 관심을 쏟는 우리가 느끼는 착시 현상일 뿐, 로열 블루는 예로부터 영국과 프랑스 왕실을 나타내는 상징색으로 쓰였다. 

하늘색의 밝은 빛과 어두운 빛을 함께 지녀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는 이 색은,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영국 여왕을 위한 드레스를 만드는 대회에 참여한 방앗간 주인들에 의해서 발명되었고, 드레스를 만드는 중 이 색을 발명하고 사용하였다’고 전해진다. 

남색의 침착함과 보라색의 화려함을 동시에 지닌 로열 블루는 ‘왕실의 색’이라는 점을 넘어 왕세자비 개인에게도 뜻깊은 색이다. 윌리엄 왕세손이 약혼과 결혼을 발표하며 캐서린 미들턴에게 선물한 반지는 찰스 왕세자가 다이애나에게 선물한 것과 같았는데, 이는 푸른 빛이 영롱한 사파이어 반지였다. 자애와 침착함, 우아함과 겸손을 상징한다는 데서 사파이어의 푸른 색과 로열 블루가 궤를 같이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처럼 파란색은 청춘과 반항, 젊음과 퇴폐, 우아함과 고고함까지 다양한 감정을 동시에 담은 색이다. 스펙트럼에 따라 이토록 다양한 이미지를 투영하고 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파란색을 능가할 단일 색상은 별로 없다. 돌고 도는 패션 이미지만큼, 청초한 푸른 새벽부터 끓어오르는 젊음의 순간까지 다양한 푸름이 우리 주변에 있다. 그 파란색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또한, 위의 ‘예시’들을 넘어 온전히 당신만의 몫이다.


© James Dean wears Levi's jeans for the <Giant> movie.


© James Dean wears Levi's jeans for <Rebel Without a Cause이유 없는 반항> movie poster.


 © James Dean wears Levi's jeans for <Rebel without a Cause 이유 없는 반항>.



© Kate Moss and Mark Wahlberg for Calvin Klein Jeans campaign, 1992. Photograph by Herb Ritts.


© Kate Moss for Calvin Klein Jeans Autumn/Winter 1996 campaign. 


© Kate Middleton in blue dress at Freedom of the City ceremony in Quebec, Canada, 2011.




© Kate Middleton wears 1950's inspired coat for her first engagement of 2017.


written by Hong Sukwoo 홍석우
Fashion Journalist, <The NAVY Magazine> Editor/ Fashion Director.

서울에 기반을 둔 패션 저널리스트이자 <더 네이비 매거진 The NAVY Magazine> 편집자. 서울 거리 풍경을 기록하는 블로그 YourBoyhood.com의 사진도 찍고 있다.

음악 Music _ Wed, June 1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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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만든 음악을 귀로 듣는다.'이게 음악이자 오늘날 음원입니다.

'음악과 결합한 영상을 눈으로 보며, 듣는다.'이건 음악에 기반을 두어 만든 뮤직비디오의 형식이죠. 

우리가 아는 대중음악 pop music이란 항상 사람들의 머리에서 나와, 사람들의 귀로, 다시 머리로 들어와 각인되고 공유하는 반복이었습니다.

음악을 '저장'하는 매체는, 고작 100년 남짓한 근현대 음악사 안에서 숱하게 바뀌었습니다. 조금 다른 영역이지만, 흑백 브라운관 TV가 70인치 5K LED TV로 변하는 사이, 발전한 것은 영상을 전달하는 기술과 산업의 규모입니다. 사람들이 그 작고 네모난 상자 안에 들어가서, 희로애락을 전달하고 공감하여 소통해나가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음악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요. 

USB, 다운로드 코드를 적은 문서, LP, LD, CD와 카세트테이프, 그리고 MP3에 이르기까지, 매체들의 차이가 듣는 경험의 차이를 만들었을지언정, 노래를 귀로 듣고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몸을 흔들고, 때로는 감동을 하는, 그 과정 자체는 항상 그대로 아닌가요.

오늘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기술과 전달 방식의 발전을 따라오지 못한 해프닝으로, 훗날 분명하고 냉소적으로 기록될 겁니다. 논쟁을 유발하기 위하여 의도했다든지, USB의 품질에 관한 이야기는 본질과 하등 관련 없는 이야기일 뿐이고요('가공'의 '정도'가 '품질'을 말하는 단 하나의 기준이라면, 찢어진 청바지부터 베트멍과 라프 시몬스의 옷들, 그리고 온갖 해체주의로부터 영감 받은 공산품들은 전부 벼룩시장에만 존재해야 할 겁니다).

음악을 만들고 음악을 듣는다. 

그게 전부이고, 또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권지용 Kwon Ji Yong> EP by G-Dragon, 2017.

2016년 10월 24일 저녁 7시 59분 _ Thu, June 1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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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4일 저녁 7시 59분에 어떤 기분이셨냐'고 방금 <JTBC 뉴스룸>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이 손석희 앵커에게 질문했죠. 손 앵커는 좀 당황한 듯했지만, '아무 생각 없이 준비한 보도를 했다'고 답했고요.

JTBC 뉴스룸이 처음으로 제기한 최순실 국정 농단 관련 의혹을 '덮으려고'박근혜 씨가 개헌 카드를 꺼내 들었으나, 사뿐하게 덮을 정도의 새롭고 커다란 의혹들 - 태블릿 PC의 연설문 첨삭 등 - 이 쏟아진 날이 작년 10월 24일입니다. 7시 59분은 그 모든 뉴스를 알고 있었을 앵커가 마지막으로 호흡을 가다듬을, 뉴스룸 시작 딱 1분 전이죠. 방금 봉준호 감독이 짜릿했다는 건 바로 그 기억일 겁니다.

다른 얘기지만, <옥자 Okja, 2017>는 넷플릭스 NETFLIX로 한 번, 극장에서 한 번 보려고 합니다.

Leica Sofort vs The Impossible Project I-1 Instant Cam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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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 소포트 Leica Sofort. 라이카에서 처음 출시한 즉석 필름 카메라로 컬러와 흑백의 두 가지 전용 필름과 함께 출시했다. 후지필름 Fujifilm의 인스탁스 미니 Instax Mini를 기반으로 만들어서 인스탁스 미니용 필름도 사용할 수 있다. 디자인을 뺀 기계 성능 또한 후지 인스탁스 미니 90와 대체로 같다.

사진 속 흰색 카메라는 촬영용으로 빌린 제품이다. 흰색의 깔끔한 느낌과 캔버스 면 소재의 스트랩 조화가 마음에 든다. 38만 원이란 가격은 부담스럽지만, 라이카 로고를 단 카메라치고는 저렴한 축에 든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사진은 어떻게 나오는가? 

몇 장 찍은 결과물에 폴라로이드 Polaroid를 비롯한 후지 인스탁스 미니 시리즈를 넘어선 무언가는 없다. '라이카'라서 너무 좋다는 느낌이 들진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나 언젠가 즉석카메라를 구매 목록에 올린다면 아마 이 카메라와 임파서블 프로젝트 The Impossible Project의 'I-1 아날로그 인스턴트 카메라 Analog Instant Camera'가 자웅을 겨룰 듯하다. 즉석카메라의 상징 같은 존재가 내게는 여전히 '폴라로이드'이고, 말 그대로 불가능한 프로젝트를 달성한 제품이 'I-1'카메라이니 말이다.


Seoul, S.Korea
Thu, February 02, 2017



photograph by Hong Sukwoo


The Impossible Project, I-1 Analog Instant Camera.

약국 Pharmacy _ Thu, February 0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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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두 번째 달이 시작되었는 줄도 모르고 이틀이 지난 오후, 강남 곳곳을 숨 가쁘게 다니다 붕 뜬 시간에 조금 걸었다. 오랜만에 신은 알록달록한 운동화는 어쩐지 오른쪽 끈만 자꾸 풀리고, 지난 일주일을 온전히 쏟아부어 만들었으나 여전히 부족해 아쉬운 촬영장에 둔 얇은 아웃도어 장갑이 아쉽다. 오늘만 또, 어쩐지 입지 않은 터틀넥 스웨터를 생각하며 찬바람을 견디다 약국이 보여 들어갔다. 

약국에도 평균의 규모란 게 있다면 그보다 작을 것이 분명한 사각 공간에 들어서니 이미 처방전을 낸 중년 아저씨 한 분이 서성이며 기다린다. 흰머리와 검은 머리가 절묘한 회색빛으로 섞인 약사님은 초로의 여성인데, 왠지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나는 장식 들어간 금속 안경테 아래 고요하게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아무 기척 없이 조금 어색할 만큼 정적으로 깔린다. 시끄러운 바람 소리와 추운 기운이 차단된 실내 장식장에서 기능성 투명밴드를 하나 집어 들고는 바로 궁금한 처치를 묻지 않고, 외국 여느 가게처럼 그저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먼저 손님으로 온 아저씨가 요청한 약을 지으러 들어간 사이, 문득 약사님 자리 왼쪽 위 책장에 짐짓 어울리지 않은 소설책이 가득한 모습을 보았다. 다양한 취향이 혼재한 책장 몇 칸에 대번 눈에 들어오는 건 애거서 크리스티 Agatha Christie의 오래된 문고판 소설책이다. 

절판된 것이 분명한 낡은 소설의 낯선 제목을 보니 이전에 읽은 책은 아니었는데, 나를 포함한 두 명의 손님이 셋이 된 시점에야 처음 들은 노 약사님의 보기보다 부드럽고, 그러나 정확한 목소리와 꼿꼿하고 전문적인 태도가 그의 작은 서가에 놓인 소설들과는 제법 괴리가 있어 혼자 문득 찰나의 상상을 펼쳤다. 그는 내 또래의 딸이 하나 있는데 그 역시 어머니를 따라 함께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가 된 것일까. 그래서 애거서 크리스티와 최근 연애 소설이 무분별하게 꽂혀 있는 것일까, 하면서.

시간으로 치면 몇 분 남짓 되지 않고, 나가는 뒤로 온 손님이 들고 온 처방전에 포함한 약들이 이 약국에는 없네요, 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휙, 하고 문을 밀어내 현실로 돌아온다.


Seoul, S.Korea
Sun, February 05, 2017

Neighbor's cafe


photograph by Hong Sukwoo

플레이크드 Flaked _ Fri, June 1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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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테반 형(<블링 Bling> 편집장)이 페이스북 댓글로 남긴 추천을 보고 시작한 <플레이크드 Flaked>. 

나의 넷플릭스 Netflix 취향은 말초적인 스릴러 장르와 미국 고교생들이 나오는 추리 및 성장물, 그리고 몇몇 다큐멘터리 정도로 제한적이었다. 윌 아넷 Will Arnett은 그럭저럭 좋아하는 배우였지만 그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던 단 한 편의 영화는 없었다. 그런 채로 <플레이크드>를 봤다. 대충 풀어헤친 셔츠에 그을린 팔뚝, 반바지와 낡은 스니커즈, 나무 상자를 단 자전거, 그리고 친구에게 빌린 올리브색 면 재킷. '밴드 오브 아웃사이더즈 Band of Outsiders'처럼 단정한 프레피 룩 스타일인가 싶다가도, 어딘지 모르게 서서히 엇나간 남성이 그렇게 잘못된 인생을 밟고 살았다면, 싶은 '매력'의 사내가 첫 화면을 점령했다. 적당히 뺀질거리고, 적당히 진지하며, 그래서 사람들을 끌어들일 줄 아는,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속마음은 알기 어려운 남자. 윌 아넷은 이 무척 '로스앤젤레스다운'드라마의 제작을 하고, 주연도 하며, 각본까지 썼다(두 번째 시즌의 몇 화만 빼고). 그가 연기한 '칩 Chip'은 공식 포스터 문구처럼, 한 걸음을 내디디고 열두 걸음 되돌아오길 반복한다.

처음에는 햇살 좋은 캘리포니아 베니스 비치 Venice beach를 배경으로 한 적당히 유쾌하고 적당히 실없는 블랙 코미디인 줄 알았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알코올 중독자 모임을 중심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각자 어느 정도 부족한 부분이 있고, 실수를 반복하며, 종종, 아니 꽤 자주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윌 아넷이 연기한 주인공 '칩'부터 상대역이자 여성 주인공 '런던 London'역의 루스 키어니 Ruth Kearney가 극을 이끄는 듯하지만, 사실 칩을 둘러싼 친구들과 조연급 인물들 각자 비중이 다를 뿐 서로 연결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이야기가 서로 모이니 오묘한 화학 작용이 일어나, 제법 몰입감 있게 펼쳐진다. 끈덕지게 달라붙어 질척거리고 종종 짜증이 나도, 매몰차게 떼어내기보단 한숨 푹 쉬고는 다시 돌아오는 야밤 술자리의 진지한 고민 같은 내용이 한 화, 삼십 분 남짓한 에피소드마다 차근차근 이어진다.

작년 공개한 시즌 1 이후, 2017년 6월 2일 공개한 시즌 2까지 막 다 보았다. 첫 시즌을 여덟 에피소드로 구성하여 등장인물이 어떻게 한 동네에서 엮이며, 또 해결하고 말려드는지 이야기했다면, 두 번째 시즌은 여섯 에피소드로 더'적은'사람들에게 집중한다. 첫 시즌을 마치고선 몇 달 후를 배경으로, 여섯 개의 에피소드에 각자 하루씩을 부여하여 딱 일주일 새 벌어진 일들이다. 새로 등장하는 인물들에겐 개인적인 의구심이 들었는데(과연 필요한 사람들인가? 하는), 결말까지 보고 나니 몇몇 주연급 배우를 선택하고 집중한 '비중의 분배'는 제작자의 의도 아닌가 싶다. 성차별적인 얘기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남자 주인공과 그들의 친구들이 겪는 일을 보면 남성 시청자들이 더 공감할 수도 있다. 하나 더, 미국 사회의 치료 모임 같은 것이 한국에 보편적이지 않으니, 문화 자체를 공감한다기보단 조금 다른 영역의 끄덕임이 종종 온다. 

극중 인물들이 사는 베니스라는 동네는 서울로 치면 아직 망가지기 전의 가로수길이나 홍대, 혹은 부산 해운대 느낌을 교집합으로 지녔다. 말쑥하게 꾸민 동네의 여러 매장과 가게들, 그리고 골목 곳곳에 비추는 온화하고 따스한 햇볕을 보는 재미도 있다. 특히 동네 이야기가 주요 내용으로 들어가는 첫 시즌에선 '지역'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오롯이 주인공 역할을 한다. 스포일러 없이 쓰려니까 어렵다. 

참, 처음에는 '블랙 코미디'처럼 보여서 몇 화 보다 말려고 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넷플릭스는 내게 시간 죽이기용 스릴러 전용 채널 정도였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더 나았다. 드라마가 아니라 영화였다면, 작은 극장에서 보고 꽤 재밌었을 거다. 생각 많은 사람들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이야기인줄 알았더니 찝찝하지 않은 여운이 남는, 그런 내용이었다.


권외편집자 圈外編集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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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빅팀스 Happy Victims>라는 연재 기사를 본 건 지금은 휴간한 일본 패션 잡지 <류코츄신流行通信·Ryuko Tsushin>이었다. '행복한 피해자들'정도로 직역 가능한 시리즈는 '옷으로 재산을 탕진한 사람들'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말 그대로 특정한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를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그들의 옷과 장신구를 끊임없이 구매하여 집에 쌓아둔 이들을 한 장의 사진과 짧은 글로 담아낸 시리즈물이다.

사진 속 피사체는 대부분 일본 젊은이들인데, 에르메스 Hermès와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 Maison Martin Margiela 같은 유럽 패션 브랜드부터 언더커버 Undercover나 포터스 Fotus처럼 더 마니악한 일본 패션 브랜드까지 다양한 열성 팬이 등장한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거나, 특별한 직업 없이 일본말로 '프리터(정규직이 아닌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잇는 사람을 뜻하는 말)'생활을 하며 온전히 자신이 좋아하는 패션 브랜드에, 조금 과장하면 목숨을 걸었다.


© <Happy Victims> by Tsuzuki Kyoichi. Published by Seigensha 青幻舎, 2008.

이 기사를 처음 본 건 약 10년 전이다. 웹과 모바일 기기가 발달하고, 특정한 취향에 몰두하는 거리의 장벽이 줄면서 일종의 '패션 오타쿠'들이 한국에도 늘었지만, 당시 어느 편집매장 바이어였던 나는 우리가 정말로 멋지다고 생각한 브랜드의 생명력이 그리 길지 않다는 현실을 체감하고 있었다. 

가령 앤-소피 백 Ann-Sofie Back과 카세트플라야 CassettePlaya 같은 브랜드는 마니아들이 존재하고 동시대 패션에도 제법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느꼈지만, 한두 시즌 브랜드의 팬이었던 고객들의 충성도는 여러 유행 스타일에 따라 곧 다른 브랜드로 갈아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일본 문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오타쿠 정신(?)을 듬뿍 반영한 <해피 빅팀스> 작업은 그래서 한국에서는 불가능하겠구나, 생각한 적도 있다. 그리곤 도쿄 어느 서점에서 이 책의 단행본을 발견한 게 2009년쯤일 텐데, 그때야 비로소 저자가 누군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츠즈키 쿄이치 Tsuzuki Kyoichi·都築響一라는 1956년생의 나이 지긋한 편집자이자 사진가였다.

그가 <해피 빅팀스>를 내게 된 계기를 책의 서문인가, 혹은 다른 인터뷰에서 읽고 속으로 '무릎을 쳤다'. <뽀빠이 POPEYE>와 <브루터스 BRUTUS>라는, 일본 출판계를 넘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패션·문화 잡지의 초기 프리랜서 편집자(잡일 담당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다고 한다)로 여려 경험을 쌓은 그가 수십 년 후 어느 패션쇼에 초대받아 첫째 줄에 앉아 있었다. 이 브랜드를 잘 모르는 자신은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 있는데, 멀리서 까치발로 컬렉션을 보는 '젊은이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이 브랜드의 가장 열성적인 고객이었지만, 이를테면 업계 관계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컬렉션에 정식으로 초대받지 못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브랜드를 사랑하고, 그 애정을 '구매한다'는 직접적 매출 행위로 표출하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이 시리즈에는 특정 인물이 구매한 패션 브랜드의 온갖 아이템이 거의 '아카이브 archive'수준으로 진열되어 있다. 

촬영 장소는 대체로 좁은 일본식 주택의 방으로, 그 인물이 누구인지 혹은 왜 좋아하는지를 열심히 다루기보단 그의 일과를 시간순으로 정리해서 보여준다. 10시 기상, 7시까지 업무, 저녁에는 맥주를 한잔한다든지 같은 평범한 내용으로 말이다. 이 묘하게 사실적인 생활감이 고가의 패션 브랜드 의상 가득한 사진과 화학작용을 일으켜서, 패션이 아닌 사진 예술 분야에도 소소한 반향을 일으켰다. 결국 일본과 유럽, 심지어 멕시코에 이르는 세계 순회 '사진전'형태로 이어졌다(만일 당신이 메종 마르지엘라 20주년 기념으로 리졸리 Rizzoli 출판사가 발행한 거대하고 하얀 양장본 책을 소유하고 있다면, 그 책의 한 장도 이 작업이 차지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해피 빅팀스> 이후 작가에 흥미가 생겼고 여러 경로로 검색해보았다. 1990년대 초에 출판한 <도쿄 스타일 TOKYO STYLE, 1993>이라는 책이 이 작업의 원점이었다. '인테리어 interior'를 다룬 잡지나 단행본은 예나 지금이나 멋지고 완벽하게 정리한 사진들이 장식하기 마련이다. <도쿄 스타일>은 다양한 직업과 취미를 가진 당시 일본 젊은이들의 좁은 집의 인테리어와 스타일을 고스란히 담았다. 사진 촬영을 위해 일부러 꾸미거나 정리하지 않고, 이런 스타일이 유행이라고 호소하지도 않은, 그야말로 날 것 그대로이자 생생한 모습이라 당황스러울 정도다.


© <Tokyo Style> by Tsuzuki Kyoichi, paperback. Published by  Chikuma Shobo 筑摩書房, 2003.

<도쿄 스타일>의 문고판 책을 아오야마 어느 서점에서 사고는 - 일본어는 읽을 줄만 알고 해석이 안 되는 실력이라 - 휙 사진들을 훑었다. 정리하지 않고, 딱히 멋지지도 않아 남에게 공개하기 싫은 평범한 집안을 본 느낌이랄까? 주류를 향한 일종의 반체제 유머 느낌도 들지만, '스타일 style'이란 단어는 언론 매체가 전파하는 그야말로 가공의 산물이 아니라, 사실 더 많은 사람의 일상 속에 녹아든 무형의 특질이라는 생각에 설득 당했다(물론 이렇게 직접 언급하는 구절은 하나도 없다).

앞서 말한 두 권의 책을 (굳이) 문화 장르로 나누면, 한 권은 '패션 fashion'을 다루고 다른 한 권은 '인테리어 interior'를 다룬다. 하지만 두 권 모두, 각 분야의 주류가 추구하는 아름다움과는 커다란 괴리가 있다. 주류 시각의 이러한 '괴리'는, 사실 실제 사람들이 인지하는 '현실'에 훨씬 더 가깝다는 걸 우리는 안다. 수백만 원짜리 가방에 이탈리아 장인이 만든 수트를 매일 입는 사람들은 패션의 중요한 인물이자 고객이지만, 그들이 전체 인구의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면 명백하다.

사실 두 책의 시각적 매력인 (종종 판매와 직결하는) '편집 디자인'은 썩 훌륭한 느낌이 들진 않는다. 엄청난 유명인사가 등장한 표지를 쓰지도 않았다. 특별한 경험을 특별하다고 얘기하는 우월감도 없다. 하지만 어떤 단행본, 어떤 기사들과도 다른 '확실한 관점'이 있다. 그 독특한 관점을 우직하게 믿고 추진하여 결과물로 꾸준히 낸다는 점이 츠즈키 쿄이치라는 편집자에게 감탄한 능력이다. 엄청나게 발로 뛰었을 거라는 당연한 추측에 조금 부끄러워진 것 또한 사실이다. 

<해피 빅팀스>와 <도쿄 스타일>을 사고서 몇 년 지나 <스펙트럼 spectrum>이라는 잡지를 만들게 되었을 때, 트위터로 그를 찾아내서 말을 걸었던 적이 있다. 140자라는 제한 탓에 몇 개의 트윗을 날리며 그에게 존경을 보냈다. 훗날 인터뷰하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그 또한 흔쾌히 응답해주었지만 여러 사정(과 게으름)으로 실현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2017년 3월 한국어로 나온 그의 편집 인생을 돌아본 책, <권외편집자>를 발견하고 단숨에 읽었다. 서점에서 책을 사고 커피숍에 혼자 앉아 세 시간 남짓, 그야말로 폭풍처럼 휩쓸리듯이 집중했다. 한 권의 책을 이토록 순식간에 읽은 건 오랜만이었다.

책의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을 펼치며 구체적인 편집 기술을 얻어가기를 기대한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맞다. 그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직장에서 편집자가 될 수 있는지, 더 좋은 물건과 문화를 소개하고 더 좋은 승진 기회를 얻는지 얘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책의 내용을 신봉하여 그와 비슷한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다면, 결혼-집-자동차로 이어지는 사회적 평판과는 정반대로 접어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2017년이 아직도 반년 남짓 남은 지금, 올해 읽은 최고의 한 권으로 <권외편집자>를 꼽는다. 

그는 자신을 '예술가'가 아니라 '편집자'라고 수없이 (책 안에서) 말한다. 얼추 40년의 편집자 인생 중 계약직 프리랜서로 근무한 처음 10년을 빼면, 그는 어디에 소속된 적이 없다. 이런 환경이 더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지도 모르지만, 자신이 해온 작업이 어떤 생각과 과정을 거쳐 결국 이뤄졌는지 생생하고 담담하게 기록한다. 미사여구로 미화한 성취가 아니라, 읽고 싶은 주제를 다룬 책이 없어서 결국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실제 입으로 들으면 존경과 실소가 동시에 나올 태도를 내내 유지한다.

대형 필름 카메라 시대부터 전자메일로 발송하는 모바일 잡지 시대까지, '콘텐츠를 만들고 전달한다'는 츠즈키 쿄이치의 편집자 자세는 여전하다. 게다가 변하는 환경에 따라 사람들이 '정답'으로 이야기했던 원칙들을 비틀어 제시하는 혜안이 있다. 

그는 '기술'을 얻으려 한다면 이 책에 실망할 거라고 했지만, 무언가 만들어 남에게 전달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주는 묵직함은 제법 선명하고 중요하다. 모두가 언급하는 커다란 행사 취재 노하우 대신, 술자리 누군가에게 듣다가 시작한 독자적인 이야기들이 이 책 안에 있다. 

사람을 만나고 연결하는 기회는 인터넷과 모바일로 늘었지만, 편리하고 작고 까만 유리 화면의 도구가 주지 않는 무언가가 사실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그야말로 실천하기 어려운 고민이 책을 읽고 남았다. 짧게 쓰려던 감상이 길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권외편집자> 출판사 '컴인북스 Commin Books'웹사이트 post.naver.com/commin_books


written by Hong Sukwoo

Stussy x Vans House Pa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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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트웨어와 스케이트보드가 만나 ‘동네잔치’를 열었다. 한남동 어느 익숙하지 않은 이름의 대사관 맞은편, 원래 사진 스튜디오와 작은 커피숍에 있는 양옥집 공간에는 그야말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음악, 패션, 예술, 디자인과 사진, 그리고 지역의 문화와 길거리, 스케이트보더들이 모여 서로 이야기하고, 술도 마시고, 떠들고 담배를 태웠다. 반스 Vans와 스투시 Stüssy의 만남이었지만, DJ 부스와 야외 공간의 커다란 현수막 두 개를 빼면 어떤 ‘신제품’ 출시를 대대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아니었다(동네잔치니까).

수많은 ‘패션 파티’를 접하고 보며 때때로 방문한다. 목적이 있어서 여는 파티들은, 대체로 들어가자마자 나오고 싶어지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 목적의 방향성 자체가 문제라기보단, 방문해야 하는 의무감과 미묘한 거리감이 존재하는 패션 파티들이 사람들에게 호소하기 위해 의도한 문화를 넣고, 예술을 넣고, 또 자신들이 지니지 않은 무언가를 ‘이식’하는 게 때로는 그저 사무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행사 자체에 문제는 없지만, 주최자나 방문자 모두 그 정도의 감각을 인지하고 받아들여서, 크게 기억에 남지 않게 된다.

그런 관점에서 이 파티는 성공적이었다. 아니, 분석적으로 무언가를 얘기한다기보단, 자신들과 다른 수많은 이가 그들의 친구들처럼 방문하였다는 점이 좋았다. 해가 쨍쨍한 토요일 오후부터 으슥하고 조금 선선해진 밤까지, 편하게 방문한 이들이 편하게 두리번거리며 편하게 앉거나 서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말이다. 방문했던 사람들 또한 비슷한 감상을 공유했다. 이런저런 사람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서로 재는 무언가를 배제한 채,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인사할 수 있는 ‘접점’을 이 자리에서 보았다.

#TheNAVYMagazine
#TheNAVYLocal








 














© Article and photographs by The NAVY Magazine.

Leica M-E Typ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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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여전히 카메라를 잘 모르지만, 라이카 Leica'M'시리즈에 대한 개념 자체가 정립되지 않은 시절 우연히 본 카메라가 '라이카 M-E Typ 220'였다. 대번 눈길을 사로잡은 이유는 바로 본체의 '색'때문이었다. 도회적으로 보이는 '무연탄 회색 페인트'로 칠한 상판의 오묘한 빛은 평소 이 회사가 시도하지 않은 색감이다. 종종 나오는 '사파리 Safari'에디션의 활동적인 카키색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M9 이후 출시한 M-E, 그리고 센서를 교체한 이후 출시한 M240과 M262 등을 거쳐 현재 M10에 이르기까지, 내가 알기로 라이카가 이 색을 다시 사용한 적은 없다. 그래서 좀 아쉬운 감도 있지만, 카메라의 기기적 성능을 떠나 M-P 블랙 페인트 모델에 이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색이 라이카 M-E에 있다. 라이카치고는 조금 '튀는'색감이라 그런지 혹은 문제가 있다는 센서 탓인지, 아니면 과도기적 다운그레이드 모델 탓인지 모르겠지만 그리 많이 판매되진 않은 거로 안다.

훗날 이 색을 다시 쓴 라이카 M 모델이 발매한다면 좋겠다.



© Leica M-E. Image courtesy of Rangefinder Yodobashi, 2012.

[The Article] My View on Fashion Social Media _ BOLD Journal Issue No.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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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의 삶을 다루는 잡지 <볼드 저널 BOLD Journal2017년 봄호에 쓴 글입니다. 제목과 내용을 편집하기 전, 원본입니다.

I wrote an article that named '
My View on Fashion Social Media' that contributed to <BOLD Journal>'s No.04/ Spring 2017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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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LD Journal
Issue No.04 — Lifelog


My View on Fashion Social Media — 패션 소셜 미디어를 바라보는 어떤 시선

처음 거리 패션 사진 street fashion photography블로그를 만들자고 결심한 건 2005년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블로그를 만들 마음은 없었다. 웹사이트를 만들고 싶었지만, 당시 만들어주겠노라 말한 친구가 군대에 가는 바람에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다 외국 블로그 두 개를 봤다. 영국의 ‘페이스 헌터 Face Hunter’와 미국의 ‘사토리얼리스트 The Sartorialist’였다.

이반 로딕 Yvan Rodic과 스콧 슈먼 Scott Schuman이라는, 이제 2000년대 패션 블로그 시대의 1세대 개척자로 자리 잡은 둘은 구글 Google이 만든 ‘블로그스팟 Blogspot(현재 Blogger.com으로 변경)’에 사진을 올리고 있었다. 블로그라면 이미 네이버에 일기장처럼 사용하고 있어서 진입 장벽이 낮았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구글에 블로그를 만들고 2006년 10월 첫 사진을 올렸다.

한창 주가를 올리던 네이버 블로그 대신 아직 한국 사용자들이 많지 않은 구글을 쓰기로 한 이유는 간단했다. 아직 ‘한류’라든지 ‘케이팝 K-pop’ 같은 문화가 세상으로 확장되기 전이라, 사람들은 서울이 어디에 있는지도 정확히 몰랐다. 한국 사람들뿐 아니라 외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서울에도 이런 스트리트 패션 street fashion이 존재한다고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스트리트’라든지 ‘패션 스냅’ 같은 단어를 전면에 내세우고 싶지는 않았다. 

이름을 지으려고 고민하던 때 정확히 이십 대 중반을 관통하고 있었고, 그때 주변에는 하나둘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친구들이 존재했다. 매일 들어가 볼 블로그 이름으로 지으면 사라지던 ‘동심’을 조금이라도 더 기억할까 싶어 ‘당신의 소년기, yourboyhood.com’이라고 지었다.

앞선 내용이 이를테면 웹사이트가 아닌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라면, 하고 많은 사진 중 ‘거리 패션 사진’을 기록하자고 마음먹은 이유도 물론 있다. 나는 02학번으로 2002년에 처음 대학생이 되었다. 당시 패션의 중심이던 압구정동에서 초중고교를 다녔지만, 패션에 관심 많은 학생은 아니었다. 그러다 나를 포함해 남들과 똑같이 입고 다니는 수많은 사람을 거리 풍경에 묘한 부끄러움을 느낀 고3 어느 봄 이후, 그저 ‘남들과 달라지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로 패션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인터넷과 커뮤니티는 존재했지만 지금처럼 정보들이 차고 넘치지 않던 시절이었다.

동대문에서 일본 잡지 몇 권을 사고, 그래 봤자 학생이 할 수 있는 정도로 용돈을 모아 옷을 사고, 그러다 보니 지금으로 보면 소위 ‘편집매장(당시는 흔히 ‘멀티숍’으로 불렀다)’들에서 일하던 또래 친구들이 생겼다. 수능을 본 이후, 여전히 남들과 다른 패션을 지상과제처럼 몰두하다가 어떤 웹사이트의 패션 스냅을 ‘찍혔다’. 

어린 마음에 벅찰 정도로 기뻤던 나는, 당장 웹사이트에 들어가 사진을 보다가 ‘스트리트 스냅을 찍을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를 봤다. 지금은 사라진 동대문 거평 프레야타운 오피스텔 사무실에서 200만 화소(!)짜리 코닥 Kodak 디지털카메라를 받았다. 카메라를 받자마자 동대문 멀티숍 친구들을 찍고, 다시 바깥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말을 걸고, 2년 정도 그렇게 거리 패션 사진을 찍었다.

(회사가 망해서) 자연스레 웹사이트도 없어졌기 때문에 – 당시 서울을 기록한 웹사이트가 사라졌다는 게 지금 좀 아쉽긴 하다 - 사진을 올릴 ‘플랫폼’이 사라지고는 여느 또래 ‘패션 키즈 fashion kids’처럼 패션 잡지에 몰두했다. 그러나 월간지들이 기록하는 패션과 유행의 허망함이 어린 나이에도 금세 다가왔다. 단 하나의 주제만을 다루더라도, 내가 보는 서울 풍경과 주변 사람들을 기록하고 싶었다.

마침 2005년 즈음에 만나던 친구들은 대체로 대학교 바깥에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패션’에 완벽하게 몰입했다. 파티를 열기도 했고, 일상처럼 홍대 주변 어딘가에서 밤마다 술을 마셨고, 정형돈과 지드래곤 G-Dragon 탓에 유명해진, 아직 청계천 고가도로를 허물기 전부터 수십 년간 그 자리에 존재한 동묘 벼룩시장에 가서 헌 옷더미를 함께 뒤지곤 했다. 블로그를 만든 초기에는 그들을 찍고, 메모리 카드에 든 사진을 조금 보정한 후, 올렸다. ‘패션 블로그’라는 단어가 생기기도 전이었는데도, 반응은 아주 빠르게, 또 세계적으로 왔다.

두어 달 만에 싱가포르와 이탈리아 Italy <엘르 ELLE> 매거진에서 사진을 싣고 싶다고 했다. 미국 <뉴욕 타임스 The New York Times>가 발행하는 <티 매거진 T Magazine> 인터넷판에 인터뷰 기사가 실렸을 때는 사진을 찍으며 알게 된 미국 친구들이 자기 일처럼 축하해주었다. 하지만 ‘패션 블로거’가 된다든지 하는 목표 의식이 주된 동기는 아니었다.

2009년인가, 이제 막 ‘패션 블로그’라는 단어가 대한민국 잡지들 사이에 들불처럼 퍼지기 시작하면서 나 또한 그들의 범주에 묶여 인터뷰나 취재 요청을 자주 받았다. 그때 생각은 더 분명해졌다. 트렌드, 유행, 패스트 패션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모든 것에 휩쓸리지 않고 조금 천천히 걷더라도 묵묵히 ‘사적인 기록’을 담고 싶었다. ‘아카이브 archive’라는 단어가 가장 중요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어렸고 또 치기 어렸다.

처음 ‘Your Boyhood’ 블로그를 연지 이제 10년(!)이 넘어버렸다. 2010년 이후 한국에도 소위 패션 블로거와 거리 패션 사진을 찍는 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이래, 솔직히 거리 ‘패션’ 사진을 찍는 데 완벽하게 흥미가 떨어졌다.

알던 사람들과 모르는 이들의 패션을 꾸준히 기록했다는 건 의미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본 많은 블로그와 패션쇼장 앞에 선 수많은 사람은 모두 그저 ‘찍고 찍히는’ 자체에 함몰했다. 그 안에는 특정 개인의 생활로부터 이어진 자연스러움이 존재하지 않았고, 세계 어디서나 볼법한 유행이 자리를 틀었다. 비슷한 시기 사람들을 담았던 이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는 곧 ‘패션 블로그’의 몰락이자 ‘패션 소셜 미디어’, 즉 사회관계망서비스 SNS의 폭발적 성장 시기와도 궤를 같이했다.

좀 더 ‘이미지와 사진’에 집중한 인스타그램이 주류 SNS로 자리 잡은 이래, 정말로 유명한 블로거 사진가들 몇몇을 빼면 모두가 남들의 거리 패션을 보기 위해 블로그를 들어가는 대신 매일 자신이 입은 스타일을 ‘셀피 selfie’처럼 각자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아웃핏 오브 더 데이 Outfit of the Day’, 해시태그로 #ootd로 쓰는 일상복 스타일은 ‘데일리 룩 daily look’의 범위 안에서 좀 더 사적인 영역으로 파고들었다.

이는 패션 블로거 시대에 득세한 거리 패션 사진과는 조금 다른 함의를 띤다. (여전히 존재하는) 거리 패션 사진이 전 세계 패션위크처럼 특별한 이벤트가 열리는 공간 속 특별한 사람들에 집중한다면, 소위 ‘데일리 룩’으로 부르는 사진은 누구도 아닌 ‘나’, 즉 개인이 모든 콘텐츠의 주체가 된다. 멋진 사람들의 스타일을 보고 참고하더라도, 결국 이 사진을 올릴지 말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팔로워가 얼마나 늘지, 결정하고 판단하는 모든 주체는 다시 개인이 되었다. 슬며시 남들을 훔쳐보는 관음과 서서히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노출의 욕구가 황금비율로 맞물렸다.

굳이 ‘데일리 룩’을 바라보지 않더라도, 패션 저널리스트 혹은 몇몇 잡지의 편집자로 일하며 종종 아쉬움이 든 순간은 외국 패션계가 지닌 방대한 ‘아카이브’의 힘이었다.

‘꾸준히 기록하고, 저장하여, 보관한다’는 아카이브의 간결한 특징은 빠르게 사는 요즘 사람들의 일상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진 않는다. 하지만 20세기 패션이나 잡지사를 심층적으로 정리한 외국 서적을 볼 때, 1990년대 전설적인 컬렉션을 다시금 앱 app에 공개하기 시작한 외국 패션 매체들을 볼 때, 그리고 다시 우리나라 대형서점에 가서 여전히 빈약한 패션 전문 서적란을 볼 때 기록의 힘을 떠올린다.

모두가 관찰자 대신 주체가 되고, 일개 직장인이 유튜브 채널로 대기업 사원보다 더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패션 블로그가 늘면서 평범했던 사람들이 유명인사의 반열에 오르는 시기를 거치고는, 이제 정말 보통 사람들이 다시금 각자의 유명세를 치르는 시대가 되었다. 빛의 속도로 바뀌는 시대를 받아들이지 못한 기성 매체들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생긴 찰나의, 그러나 거대한 변화였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의 데일리 룩 열풍을 관대한 시선으로 즐긴다. 특별한 누군가가 굳이 특별하게 무언가를 기록할 당위가 이 시대에는 없다(모두가 스마트폰 사진가인 시대!). 더 많은 이가 더 많은 시선으로 더 많은 무언가를 기록한다. 그 안에서 옥석을 고르는 것 또한, 결국 보통 사람들의 몫이 되었다.


























© Photographs and written by Hong Sukwoo 홍석우

서울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패션 저널리스트이자 컨설턴트, 수필가인 홍석우는 패션 바이어와 스타일리스트, 강사 등을 거쳐 미국 스타일닷컴 Style.com 컨트리뷰팅 에디터와 서울의 지역 문화를 다룬 계간지 <스펙트럼 spectrum>과 <어반라이크 Urbänlike> 편집장 등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서울의 거리 사진을 올리는 블로그 ‘yourboyhood.com’을 운영하고 있다.

[The Article] TALK with Ye Rin Mok _ SPECTRUM No.13 / Spring 2014 ‘ICON’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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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부터 2015년까지 편집장을 맡았던 문화 계간지 <스펙트럼 spectrum> 13호(2014년 봄)호에 쓴 인터뷰입니다. 

미국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사진가 목예린 Ye Rin Mok과 짧게 '대화 Talk'를 나눴습니다. 제목과 내용을 편집하기 전, 원본입니다.

I wrote an interview article that named '
Talk' with Yerin Mok to <spectrum>'s No.13/ Spring 2014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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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TRUM No.13 / Spring 2014
‘ICON’ issue

‘토크 TALK’는 스펙트럼이 흥미롭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나눈 ‘지금(now)’의 대화입니다. 첫 번째 토크로 만난 세 명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기반을 둔 사진가 목예린 Ye Rin Mok, 서울 소공동에서 조용히 남성복을 만드는 에스엘더블유케이 SLWK.의 이현석과 이인우, 그리고 벨기에 안트워프에서 졸업 전시를 준비하는 패션디자이너 서혜인 Seo Hyein입니다.

text 홍석우 Hong Sukwoo
edited 홍석우, 김유림 Kim Yurim, 이지현 Lee Jihyun
photography 홍석우 Hong Sukwoo (Only in SLWK.)



TALK 01. Ye Rin Mok
Photographer, lives and works at Los Angeles, The United States.

미국 LA에 사는 목예린의 사진을 처음 접한 게 벌써 7년 전이다. 그의 사진에는 따스한 햇볕이 비추는 것 같지만, 묘하게 이상한 기운도 감돈다.

TALK. 요즘 개인적으로 푹 빠진 것들이 있나? 

목예린 Ye Rin Mok: 사진 말고도 관심사와 취미가 많다. 대학교 때부터 일주일에 한두 번씩 발레를 배웠다. 아직도 잘 못하지만, 춤추는 게 즐겁다. 특히 라이브 반주와 함께할 때. 2년 전부터는 도자기 수업을 듣는다. 수업 풍경은 차분하다. 직접 무언가 만드는 것도 좋다. ‘모크샤 Moksha’는 내 남자친구가 만든 밴드인데 남자친구와 나, 둘이 구성원이다. 연주, 녹음, 작사 다 그가 하고 나는 노래만 부른다. 하지만 좋은 가수는 아니다. 모든 곡은 사운드클라우드 soundcloud.com/moksha-3에서 들을 수 있다. 

T. 음악과 사진, 건축과 여행, 당신이 찍는 다양한 피사체들…. 그 외에 ‘목예린’을 나타낼 수 있는 단어들이 궁금하다. 가능하면 그 이유도.

무딘, 곤란한, 얼빠진 blunt, awkward, goofy. 사람들은 나의 작업에서 고요 stillness와 평온함 tranquility에 초점을 맞추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작업 전반에 미묘하게 진지한 유머가 깔렸다고 생각한다(남자친구에게 물었을 때, 그가 그렇게 말했다). 나는 눈에 띄지 않고 넘어가는 것들 혹은 인정받지 못하는 것들을 포착하길 좋아한다. 너무 명백한 것들 too obvious은 좋아하지 않는다. 무명의 것들이나 색다른 것들, 기이한 것들 the obscure, the offbeat, eccentric and awkward을 즐긴다.

T. 최근 본 가장 멋진 풍경은 무엇이었나.

기차를 타고 미국을 가로질러 여행을 했다. 가장 좋았던 것은 뉴멕시코의 평원을 지날 때였다. 구름과 일몰이 장관이었다.

T. 당신이 담은 인물이나 풍경에는 ‘목예린답다’는 느낌이 있다. 작업에서 어떠한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나.

뭐라고 정확히 말할 수 없다. 모든 것이 중요하다. 무엇이 좋은 사진가를 만드는지 누가 알겠나? 다만,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눈으로 본인의 경험을 찍어낼 수 있는 사람이 좋은 사진가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또 미학적으로, 화려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사진을 선호한다. 그렇다고 굉장히 ‘사실적인’ 사진을 좋아한다는 건 아니다. 독특한 목소리를 지닌 어떤 개인적인 것, 색다른 것이 좋다.

T. 아직 가보지 않은 곳 중에서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을 하고 싶다. 항상 러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지금도 매료되어 있다. 2년 전, 이안 프레이저 Ian Frazier가 쓴 <시베리아 여행기 Travels in Siberia>를 읽었는데 그 후 더 가고 싶어졌다.

T. 작년 12월, 페이스북에 남긴 ‘라이카로 흑백 사진을 찍고 싶다 I want to get a Leica and start shooting b&w.’는 글을 봤다.

올 초 흑백 필름 다섯 롤을 샀지만, 아직 찍지 않았다. 언젠가 유튜브에서 흑백 사진 찍는 사진가의 동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단순한 과정이 좋았다. 그는 20년 넘게 같은 카메라와 같은 종류의 필름을 썼다. 지금은 선택의 폭이 무척 넓지 않나. 그걸 부러워했던 것 같다.

T. 당신 작업이 좋은 심미안을 지닌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것도 알고 있나?

굉장히 기분 좋은 말이다. 요즘 새로운 한국인 인스타그램 팔로워들이 생겨 주의 깊게 보고 있었다. 한국 젊은이들과 소통하고 싶다. 한국에서 작업하고 보여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곧 여행할 수 있길 바란다.

T. 나이가 들면서 작업이나 삶의 태도 또한 바뀐다. 그러한 부분이 있나.

나이 들수록, 우리의 시간이 더 가치 있어진다. 어릴 때는 이것저것 시도해보기도 하지만, 점점 더 우리는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요즘은 원하는 것들에 더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T. 당신에게 건강한 삶이란?

내가 즐길 수 있는 무언가를 하는 것과 자연 nature이 연결된 것.

T. 그렇다면, ‘좋은 작업’이란 뭔가?

작업이 그만의 목소리를 지니고 있을 때.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때. 지금 봐도, 10년 후에 봐도 언제나 새로울 때.

yerinmok.com
facebook.com/yerinmok
instagram@yerinmok








© Photographs by Yerin Mok's iPhone. Images courtesy of Yerin Mok, 2014.

[The Article] TALK with SLWK. _ SPECTRUM No.13 / Spring 2014 ‘ICON’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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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TRUM No.13 / Spring 2014
‘ICON’ issue

‘토크 TALK는 스펙트럼이 흥미롭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나눈 ‘지금 now’의 대화입니다. 첫 번째 토크로 만난 세 명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기반을 둔 사진가 목예린 Ye Rin Mok, 서울 소공동에서 조용히 남성복을 만드는 슬립워커 SLWK.의 이현석과 이인우, 그리고 벨기에 안트워프에서 졸업 전시를 준비하는 패션디자이너 서혜인 Seo Hyein입니다.

text 홍석우 Hong Sukwoo
edited 홍석우, 김유림 Kim Yurim, 이지현 Lee Jihyun
photography 홍석우 Hong Sukwoo (Only in SLWK.)


TALK 02. SLWK., Lee Hyunsuk & Lee Inwoo
Designer Duo, lives and works in Seoul, The Republic of Korea.

슬립워커 SLWK.의 이현석과 이인우는 남성복을 만든다. 패턴부터 봉제는 물론 고객에게 옷을 전달하는 일련의 과정을 소공동의 오래된 빌딩 작업실에서, 둘이 한다.

TALK. 옷 한 벌 만들 때 보통 얼마나 걸리나? 

SLWK. 이현석 Lee Hyunsuk: 마무리까지 이틀에서 사흘 정도, 디자인까지 하면 일주일 넘게 걸린다.

T. 예전에 좋은 공장을 찾았다지 않았나.

Lee Hyunsuk: 완성하면 한 끗 차이로 마음에 안 들었다. 남들은 잘 모르지만, 우리가 만든 옷과 느낌이 다르다. 타협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잘 안된다.

SLWK. 이인우 Lee Inwoo: 공장 생산 물건이 무조건 안 좋다는 건 아니고, 손끝에서 나오는 게 다르달까. 우리가 신경 쓴 부분은 놔두고, 신경 쓰지 않던 부분에 신경 쓴다.

T. 소공동 아틀리에에서만 3년째이다. 어떤 느낌인가?  

Lee Hyunsuk: 예전에는 옥탑방에서 옷만 만들다가 나이 먹고 공장에 있는 이상한 아저씨처럼 될 줄 알았다. 왜 공장 가면 ‘저 아저씨 어떡하나’ 걱정해주지 않나. 그런데 그게 나쁜 게 아니더라. 우리도 작년에는 규모도 키우고, 방식을 바꿔서 평범하게 가려고 했다. 서로 타협하면서 살아가야 하는데, 한 번 방식을 바꿔 진행해보니 결국 내가 꿰매야지, 이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Lee Inwoo: 작업이 재밌다. 손으로 만드는 게 좋아서 선택한 거니까.

T. ‘SLWK.’는 조용한 느낌의 브랜드이다. 인터넷, 사회관계망서비스 SNS 등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싶진 않나?

Lee Hyunsuk: 원래 SNS에 관심이 없었는데, 뉴욕 필하모닉 New York Philharmonic 인터뷰를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Lee Inwoo: 요즘엔 필하모닉 관현악단이 다 망한다고 한다는데, 뉴욕 필하모닉만 잘된다. 인터넷으로 살아난 거다. 인터뷰에서 말하길, 내적인 부분은 하나도 변하지 않되 외적인 부분은 시대에 맞춰서 다 바꿔야 한다고 했다. 우리도 그래야겠다고 생각했다.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고 6개월 후에야 문을 열었다. 첫 글 올리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하다 보니까 익숙해진다. SNS 한다고 옷이 이상해지는 것도 아니고, 약간 신경 쓸 게 늘어난 정도랄까? 사람들을 더 가까이에서 만나고, ‘좋아요’ 누르고 반응이 오는 걸 보면 이게 더 편하겠다 싶었다.

T. 친하게 지내는 디자이너는 누군가? 

Lee Inwoo: 스펙테이터 Spectator의 안태옥 Anteok과 종종 연락하는데,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서 잘 만나지 못하고 있다.

Lee Hyunsuk: 보통 비슷한 장르끼리 모이지 않나. 아메리칸 캐주얼, 클래식…. 우리는 낄만한 곳이 별로 없다. 

T. 앞으로 다른 이들과 협업할 생각은? 

Lee Inwoo: 스펙테이터와 계획 중이다. 이번 겨울 정도에는 하지 않을까. 

T. 그런데 이인우는 원래 비보이 B-boy 출신 아닌가. 세계 공연도 많이 다녔다. 요즘도 예전만큼 춤추나.

Lee Inwoo: 많이 돌아다니지는 않지만, 춤 자체는 더 능동적으로 변했다. 예전에는 팀원들과 같이 맞춰야 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그런 게 없어지니 더 자유롭게 된다.

T. 지금도 소속팀이 있나? 

Lee Inwoo: 여전히 속해 있고, 다른 팀도 있다. 주말에 팀 연습실 가서 연습하고, 대회도 나간다. 춤은 예전보다 덜 춘다고 해서 안 되거나 변하지 않는 듯하다.

T. 벌써 삼십 대에 다다랐으니, 팀에서 십 대 친구들을 보면 느낌이 남다르겠다.

Lee Inwoo: 이제 춤추는 십 대가 없다. 요즘 친구들은 별로 춤추려고 하지 않는다. 일찌감치 ‘공부’해야 하는 걸 안다고 할까? 비보이 쪽도 예전 같지 않다. 요즘엔 다 한쪽 발만 담그려고 한다. 제일 어린 친구가 대학생이고, 그것도 ‘스펙’으로 경험 쌓으려는 느낌이다. 춤추러 가도 분위기가 달라졌다.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 촬영장처럼 변했다. 

T. 올해 목표가 있나.

Lee Inwoo: 작업을 잘하는 것. 

Lee Hyunsuk: 늦지 않게 발매하는 게 목표다. 예전에는 목표도 구체적이었는데, 항상 그렇게 안돼서 큰 목표 하나만 잡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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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부터 2015년까지 편집장을 맡았던 문화 계간지 <스펙트럼 spectrum> 13호(2014년 봄)호에 쓴 인터뷰입니다. 

서울에 기반을 두고 작업하는 패션 디자이너 듀오 슬립워커 SLWK. 짧게 '대화 Talk'를 나눴습니다. 제목과 내용을 편집하기 전, 원본입니다.

I wrote an interview article that named '
Talk' with SLWK. to <spectrum>'s No.13/ Spring 2014 issue.










© Photographs by Hong Sukwoo, yourboyhood.com.

[The Article] TALK with HYEIN SEO _ SPECTRUM No.13 / Spring 2014 ‘ICON’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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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TRUM No.13 / Spring 2014
‘ICON’ issue

‘토크 TALK는 스펙트럼이 흥미롭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나눈 ‘지금 now’의 대화입니다. 첫 번째 토크로 만난 세 명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기반을 둔 사진가 목예린 Ye Rin Mok, 서울 소공동에서 조용히 남성복을 만드는 슬립워커 SLWK.의 이현석과 이인우, 그리고 벨기에 안트워프에서 졸업 전시를 준비하는 패션디자이너 서혜인 Seo Hyein입니다.

text 홍석우 Hong Sukwoo
edited 홍석우, 김유림 Kim Yurim, 이지현 Lee Jihyun
photography 홍석우 Hong Sukwoo (Only in SLWK.)


TALK 03.  Hyein Seo
Fashion Student & Fashion Designer, lives and works in Antwerp, Belgium.

서혜인은 안트워프 왕립 예술 아카데미 Royal Academy of Fine Arts Antwerp 학생이다. 지난 뉴욕패션위크 기간 중 열린 브이파일즈VFILES.com 컬렉션 이후, 그는 패션계의 ‘깜짝 스타’가 됐다. 리아나 Rihanna와 투애니원 2NE1씨엘 CL이 그의 옷을 입고, 스타일닷컴Style.com에 대서특필됐다.

TALK. 브이파일즈 VFILES.com, 이하 VFILES 컬렉션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

서혜인 Seo Hyein:석 달 전쯤 VFILES 에디터 솔로몬 Solomon이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왔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사진을 보고 연락한 것 같은데, 비행기 표와 호텔을 제공할 테니 뉴욕의 VFILES 컬렉션에 참가해보겠느냐고 물었다. 원래 경연대회 competition인데 작업을 보고 따로 연락해준 걸 나중에야 알았다. 좀 의심스러워서 미국 친구들한테 뭐 하는 곳이냐고 물어보니, 다들 ‘VFILES is cool!’이라고 하더라.

T. 이번 VFILES 컬렉션 의상들은 어떤 콘셉트로 만든 옷인가?

컬렉션 주제인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Fear Eats The Soul’는 라이너 베스너 파스빈더 R.W. Fassbinder의 영화 제목에서 가져왔는데, 원래 유명한 독일 속담이다. 3학년 컬렉션을 준비하기 전에 단테의 <신곡>과 바니타스 vanitas 페인팅, '죽음의 무도 Danse Macabre; 중세 말기에 유행한, 죽음의 보편성에 대한 알레고리를 묘사하는 미술 장르. - 편집자 주'와 같이 어둡고 아름다운 이미지와 이야기에 빠져 있었다. 

조사하다가 찾은 '다리오 아르젠토 Dario Argento;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 편집자 주'의 고전 공포 영화를 보면서 그 판박이 표현 Cliché들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죽음의 무도’의 주제는 공포 속의 해학인데, 이 점을 현대적으로 재미있게 풀어보고 싶었다. 

카미유 생상스 Camille Saint-Saëns가 작곡한 ‘죽음의 무도’ 대신 힙합을 틀어놓고 춤춘다든가 하는 상상으로 많은 삽화 작업 후 옷으로 풀어봤다. 아직 한 번의 컬렉션만 해봤지만,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드로잉과 연결하는 이야기 storytelling인 듯하다. 

컬렉션을 시작할 때 하나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놓고, 이야기의 장면들을 삽화 그리듯이 드로잉한다. 디자인 아이디어 대부분이 삽화 속에 있다. 사람들이 옷을 보고 어떠한 이야기를 풀었는지 어렵지 않게 알아챘으면 좋겠다.

T. 컬렉션을 마치고 정말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스타일닷컴, 패션 블로거 수지 버블 Sussie Bubble 등 짧고 굵게, 폭발력 있는 반응을 봤다. 인스타그램의 팔로워 숫자도 급격히 늘고, 스타일닷컴 메인페이지에 실린 것은 아직도 좀 비현실적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 인터뷰도 정말 신기하다.

T. 미디어들의 반응 이상으로, 실제'로 체감하는 반응도 있나.

생활은 예전과 마찬가지다. 다만 많은 매장과 패션 잡지에서 들어오는 요청으로 체감한다. 한 번도 내 레이블을 하게 될 것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다들 하나의 브랜드로서 촬영과 구매 요청이 들어오는 게 실제 느끼는 반응이다. 

T. 패션 매체들과는 어떤 얘기가 오가나?

몇 달 사이에 이렇게 극적으로 (삶이) 바뀌는 경우가 참 드문데, 정말 매체의 힘이 엄청나다는 걸 느낀다. 쇼 끝나자마자 <보그 이탈리아 VOGUE Italia>에서 스티븐 마이젤 Steven Meisel과의 촬영으로 옷을 빌려 갔고, 공부하면서 항상 보던 잡지들에서 인터뷰와 촬영 제의가 들어왔다. 말도 안 된다. 다 잘하고 싶은데, 아직 학생이라 졸업 컬렉션 준비로 바빠서 그만큼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된다. 

T. 갑자기 혼자 감당하기 힘들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보통 학생 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나.

한번도 스타 디자이너나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내성적인 편이라 이런 삶을 살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신난다기보다는 아직 부끄럽다. 졸업하고는 그저 좋은 메종maison에서 좋은 자제와 원단 만지고, 보면서 일하는 게 꿈이었다. 그런데 이번 일로 개인 레이블을 만드는 것에 반 쯤 발을 담궈버린 것 같아서, 방향 설정을 잘 해야 하는 시기인 듯하다. 

T. 안트워프의 분위기는 어떤가? 잘 맞는 편인가?

굳이 (유학을) 안트워프로 온 이유 중 제일은 도시 자체가 주는 분위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사람도 풍경도 앤트워프 특유의 회색빛 속에 차분히 가라앉는 느낌이다. 이다지도 정적인 도시에서 마르탱 마르지엘라 Martin Margiela나 월터 반 베이렌동크 Walter Van Beirendonck처럼 뒤틀린 아름다움에 매료된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나왔을까 하는 호기심도 있었다. 

앤트워프에서 오래 살아보니, 이 작은 도시에서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세계로 더 깊게 파고들어 가는 사색인 걸 알게 됐다. 고요를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금세 떠났다. 학교도 차분하다. 대부분 집에서 작업하고, 학교에서는 개별 지도 tutorial만 받는다. 

T. 곧 다가올 봄, 4월에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있나. 

여기는 방학이 여름 3개월뿐이라 한국의 봄이 정말 그립다. 유치하지만, 벚꽃 밑에서 술이나 마시고 싶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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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부터 2015년까지 편집장을 맡았던 문화 계간지 <스펙트럼 spectrum> 13호(2014년 봄)호에 쓴 인터뷰입니다. 

서울에 기반을 두고 작업하는 패션 디자이너 서혜인 Hyein Seo 짧게 '대화 Talk'를 나눴습니다. 제목과 내용을 편집하기 전, 원본입니다.

I wrote an interview article that named '
Talk' with Hyein Seo. to <spectrum>'s No.13/ Spring 2014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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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를 정리한다 _ Sat, September 0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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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를 하나 써야 하는데, 새벽 늦게 잠들어서 정오 즈음 일어난 후 냉장고에 있던 카레에 치즈와 달걀을 풀어 전자레인지에 3분간 돌렸다. 달걀이 약간 엉성한 반숙처럼 익고 치즈는 물론 범벅이 되는데, 입맛 없는 오후 끼니를 대충 때우고 싶은 요즘 발견한 방법이다.

오늘까지 글을 넘기자, 마음먹었지만 아직 발동 걸리기 전이고 오랜만에 혼자 있는 토요일 오후라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몇 가지 한다. 무료 시청 기간 한 달이 막 지난 넷플릭스 Netflix로 <브로드처치 Broadchurch> 두 번째 시즌을 건성으로 곁눈질하며, 역시 손 놓고 있던 예전 작업실에 두고 쓴 무인양품 無印良品의 불투명한 이동형 플라스틱 수납장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한가득 버릴 영수증 더미며 고장 난 이어폰 사이로 <스펙트럼 spectrum> 매거진을 처음 만들 때, 그러니까 2010년 11월에 쓴 전자 메일을 출력한 계획서 비슷한 게 나와서 잠시 예전 생각도 났다. <브로드처치> 첫 시즌은 그야말로 감탄하며 보았다. 강렬하지 않지만 서서히 죄어오는 감각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해안가 풍경이 특히 그랬다. TV 드라마는 아무리 돈을 들여도 '스펙터클'만 안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건 아니었다. 영상이 꽤 섬세했으니까. 하지만 두 번째 시즌은 여러모로 많이 바뀌어서 첫 시즌만큼 흥미는 없다.

수납장 안에 또 수납공간을 마음껏 나눌 수 있는 구조의 서랍장 안에 이제서야 대강 무엇이 어디에 들었는지 알게 된 후, 마치 의식의 흐름처럼 새로 들일 옷장을 생각하며 오랜만에 잡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게 '잡지를 정리한다'는 건 글을 쓴다든지, 하여 참여했던 여러 잡지 중 내가 기고한 부분과 표지를 자르고 나머지는 휙 읽어본 후 차곡차곡 모아 아파트 폐지 모으는 곳에 보내는 과정을 뜻한다. 이렇게 쓰니 뭔가 동족상잔 느낌도 들고, 종이 잡지에 애정이 있다면서 양면적인 기분도 들지만 사실 공간이란 제약이 있고, 종종 마련하는 이 같은 기회에 읽어 보는 철 지난 패션 월간지들은 대체로 월간지 본연에 무척 충실하여 오래 두고 읽을 정도의 흥미는 여느 출판물에 비할 바 아니다(당연하다면 당연하더라도).

이건 사야 해, 이번 시즌에는 저 색깔이야, 마침표와 쉼표보다 느낌표 두 개쯤으로 끝나는 수많은 이야기와 새로 생긴 공간과 새로 무언가 하기 시작한 사람들….

그들은 모를지언정 우러러보는 선배 기자들이 노력하여 쓴 주옥같은 읽을거리나, 준비하며 얼마나 고되었을지 느껴지는 특별한 화보가 물론 그 안에 함께 담겼지만, 사실 월간지를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이 들인 노력이 결국 한 달 후 사라지는 허망한 기분을 이미 알아차렸을 것이다.

물론 이 일도 밥벌이이긴 하나, 적어도 일반적인 회사에 다니지 않기로 어릴 때 결심한 이들이 자발적으로 이 업계에 들어온 경우가 많고, 무언가 할 때나 준비할 때는 분명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 것이 생각보다 훨씬 짧게 생동하고 사그라지거나 혹은 그도 저도 아니게, 파도 끄트머리의 거품만큼이나 금세 사라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나 또한 여러 잡지를 만들거나 참여할 때 어느 정도는 그러했다.

표지와 글이 들어간 부분은 기껏해야 몇 쪽에 불과하여, 책장 한쪽을 당당히 차지하던 무겁고 거대한 잡지들의 빈자리는 고작 몇 권의 해체 작업을 거치면 금세 눈에 띌 정도가 된다. 지금껏 수백 권의 잡지에 기고했고 그보다 훨씬 많은 잡지를 사들이거나 참여한 대가로 증정본을 받았다. 종종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기분으로 오래된 잡지를 정리하면서도, 종이 잡지를 '자르고 버린다'는 느낌에 어딘지 모르게 서늘해지고, 수년 전 기사를 보며 그때는 홀로 고고할 것 같던 무언가들이 쉽사리 잊히는 광경도 누구네 인생을 바라보듯이 알아차릴 정도는 되었다.

흠, 그저 조용하고 고요한 토요일 오후이지만 이전에 무얼 했다는 자랑스러운 감상이 아님에도 글로 좀 남기고 싶었다.


Seoul, S.Korea
Sat, September 03, 2016

A Fashionable Life of fashion magazines


photograph by Hong Sukwoo

[The Article] Noblesse.com Weekly Briefing No.06 _ Tue, March 1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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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뉴얼한 <노블레스 Noblesse> 매거진의 디지털 웹사이트, <노블레스닷컴 Noblesse.com>에 2017년 2월 둘째 주부터 '노블레스닷컴 위클리 브리핑 Noblesse.com Weekly Briefing'이라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패션을 중심으로 예술과 지역 문화 등의 소식을 브리핑 형식으로 올리는 콘텐츠입니다.

아래가 네 번째 원고이며, 웹사이트에 들어간 것과 조금 다른 수정 전 원본입니다. 편집한 최종 원고는 Noblesse.com에서 볼 수 있습니다.

Noblesse.com Weekly Briefing 노블레스닷컴 위클리 브리핑

‘노블레스닷컴 위클리 브리핑’은 지난 한 주간 벌어진 국내외 패션·문화·라이프스타일 소식 중 <노블레스> 독자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이야기들을 골라, 매주 월요일 소개합니다.

A.젠틀 몬스터와 <하입비스트>의 만남








© Gentle Monster x Hypebeast photo shoot for <Hypebeast> Magazine’s upcoming issue, 2017. Images courtesy of Hong Sukwoo.

선글라스 브랜드 젠틀 몬스터 Gentle Monster를 그저 ‘천송이 선글라스’ 정도로 기억하는 건 무척 부당합니다. 누구도 이 한국 브랜드에 관심 두지 않을 때부터, 그들은 서울 곳곳의 창작자들과 협업을 진행하고, 단지 얼굴에 쓰는 장신구를 넘어선 이미지를 창출해내길 바랐습니다.

포트폴리오가 마련되지 않은 젊은 창작자들을 과감하게 기용하여 전위적인 협업과 윈도우 디스플레이를 해내고, ‘제품을 돋보이는’ 것과는 그리 관계없어 보이는 공간 디자인에도 큰 열정을 쏟기 유명한 젠틀 몬스터입니다. 그들이 한국을 넘어 중화권에 큰 인기를 끈 배경에는, 물론 한류와 한류 아이콘들의 ‘착용’이 큰 역할을 했겠습니다만 그간 진행한 다양한 패션 캠페인과 프로젝트들의 공 또한 컸습니다.







© Gentle Monster Garosu-gil flagship store in Sinsa-dong, Gangnam-gu, Seoul, S.Korea. Images courtesy of Hong Sukwoo.

지난 2월 10일 금요일, 젠틀 몬스터 가로수길 플래그십 매장은 하루를 통틀어 비공개 촬영과 파티를 위하여 문을 닫았습니다. 스타일리스트와 패션 디자이너, 음악가와 배우 등 젠틀 몬스터의 아이콘 스물다섯 명은 젠틀 몬스터의 새로운 선글라스 시리즈를 고르고, 재능 넘치는 사진가 조기석 Cho Giseok앞에 자세를 취했습니다(그중에는 배우 틸타 스윈턴 Tilda Swinton과의 협업 선글라스 시리즈도 있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번 촬영의 가시적인 목표는 홍콩에 기반을 둔 웹 매거진 <하입비스트 Hypebeast>가 매년 두 차례 출간하는 동명의 종이 잡지에 싣기 위함입니다. 스트리트웨어 streetwear와 스포츠 브랜드 스니커즈 시대부터 고급 기성복과 라이프스타일, 대중음악 정보까지 전부 담아낸, 세계적으로 성공한 이 온라인 매체는 얼마 전 한국판 ‘하입비스트 코리아’를 정식으로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둘의 만남은 그래서 인상 깊었죠.

개인적으로는 오랜만에 젠틀 몬스터 선글라스와 매장 곳곳을 꼼꼼하게 둘러본 기회였습니다. 수년 전에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패키지 디자인에 공들인 브랜드였지만, 이제 물건을 매장에서 구매할 때 겪는 경험을 다각도로 충족하는 데 더 신경 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젠틀 몬스터의 현재를 보면서 앞으로 더 많은 한국 패션 브랜드가 그들의 색을 내고, 더 당당히 존경할 수 있을 만한 브랜드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gentlemonster.com


B.태국 방콕에서 만난 라이프 콘셉트 매장, ‘더블유더블유에이 추즐리스 카페’









© WWA x Chooseless Café at Bangkok, Thailand. Images courtesy of Hong Sukwoo.

얼마 전 태국 방콕 Bangkok에 다녀왔습니다. 동남아시아 지역은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태국은 처음이었습니다. 다만 방콕에는 흥미로운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매장 그리고 창작자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관광객으로 만날 수 있는 거대한 쇼핑몰과 건축물이 아닌, 서울에서 만나더라도 자연스럽게 수긍할 만한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공간들을 위클리 브리핑에 비정기적으로 소개하려고 합니다.

‘더블유더블유에이 추즐리스 카페 WWA x Chooseless Cafe'는 태국 패션 브랜드 '더블유더블유에이 WWA'와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편집매장을 느슨하게 합치고, 카페와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콘셉트 매장 lifestyle concept store’입니다. 2층 빌딩을 통째로 쓰는 이곳은 웬만한 유럽 패션 하우스의 청담동 플래그십 매장만큼 넓어요. 한국이라면 이 정도 규모에서 단순히 식음료와 음식만 팔지 ‘않는’ 가게를 짓는 게 대기업이 아니고서야 쉽지 않을 겁니다.

1층 카페와 레스토랑, 매장 공간에서 이어진 2층은 온전히 '추즐리스'가 고른 빈티지 의류와 소품, 일본과 미국, 유럽 디자이너 브랜드와 한국 브랜드(‘커버낫 Covernat’이 보여 반가웠습니다)와 장신구, 태국 현지 local 브랜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재밌는 점은 태국 물가가 한국보다 낮아서 '꼼데가르송 셔츠 COMME des GARÇONS SHIRT'라인의 긴소매 셔츠가 한국 돈으로 5만 원 정도라는 점입니다(일본이나 한국, 다른 외국 세컨 핸즈 seconds hands 매장에서는 10만 원을 훌쩍 넘기 일쑤죠).

여성복과 남성복이 7:3 정도 비율로, 집기에 큰돈을 들이지 않은 듯하면서도 '빈티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밌게 구경할 수 있어요. 다만, 수량 자체가 많진 않네요. 매장 곳곳에 편한 느낌의 설치 installation 구성도 재미있습니다. 기업이 운영하는 보통 패션 브랜드 디스플레이처럼 '각'을 잡지 않고도, 아기자기하고 지역 문화 local culture 친화적인 느낌이 배어 있어 인상적입니다.

추즐리스의 대표 중 한 명인 품 Pum은 방콕 패션계의 유명인사 중 한 명입니다. 남편과 함께 원래 다른 곳에서 빈티지 매장 등을 열었다가, 원래 본인이 하고 싶었던 카페와 레스토랑을 결합하여 새로 열었습니다. 2년 정도 '무척 어렵게'공사와 재단장을 마치고, 문을 연 지는 이제 1년 정도 되었다고 했습니다.









© WWA x Chooseless Café at Bangkok, Thailand. Images courtesy of Hong Sukwoo.

여행자로서는 가장 중요한 음식도 맛있었습니다. 동남아식 향신료에 거부감이 드는 사람들이 먹을 법한 브런치 메뉴도 여럿 있다. 매장에는 이런 귀여운 빈티지 '키스 해링 Keith Haring'티셔츠가 900밧 bhat으로 한화 약 2만9천 원 정도입니다.

1층 소품 진열장 티셔츠에는 유독 레이 가와쿠보 Rei Kawakubo의 명언이 눈에 띕니다. 매장과 맞닿은 건물에는 고급 셔츠 메이커 키튼 Keaton과 일주일 중 며칠만 여는 시크릿 바 secret bar, 그리고 비정기적으로 문을 여는 LP 매장과 일식점 등이 함께 있습니다.

옆에서 본 그들은 비슷하고도 다른 취향을 공유하는 친구이자 동료들처럼 보여서, 뭔가 부러운 느낌도 들었습니다. 

WWA x Chooseless Cafe
77 Ekkamai 21 Alley, Khwaeng Khlong Tan Nuea, Khet Watthana, Krung Thep Maha Nakhon 10110
Tel. 02 006 4349


written by Hong Sukwoo 홍석우
Fashion Journalist, <The NAVY Magazine> Editor/ Fashion Director.

서울에 기반을 둔 패션 저널리스트이자 <더 네이비 매거진 The NAVY Magazine> 편집자. 서울 거리 풍경을 기록하는 블로그 YourBoyhood.com의 사진도 찍고 있다.

여름 _ Mon, June 2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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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부터 간헐적으로 내린 비가 월요일 오후에는 천둥까지 동반하여 세차게 퍼붓는다. 그러다 다시 그쳤다 내렸다 반복하면서도 바늘과 실처럼 번개도 가끔 친다. 내부순환도로, 청담동 골목과 압구정동 대로변도 모두 젖은 아스팔트 색과 짙은 회색으로 '물'이 들었다.

비가 그래도 내려야지, 하며 미팅 후 먹은 늦음 점심에 니트 소재 까만 운동화 앞코가 살짝 젖어도 찝찝하기보단 반갑기 그지없다. 그래 봤자 감상 따위를 적을 뿐, 간절함이야 사실 여느 농민들께 비할까.

흐릿하니 잔뜩 먹구름 낀 하늘을 동반한 이른 저녁, 손님이 드물어 텅 빈 백반집에는 친구와 둘이 앉았다. 빗소리를 배경 삼아 찬그릇을 비워가니, 친구의 말처럼 "여름"이 진짜로 왔다.

어딘지 모르게 옛날 비슷한 감정을 느낀 날이 있던 것만도 같았다.


Seoul, S.Korea
Mon, June 26, 2017

Rainy town


photograph by Hong Sukwoo

Fri, June 2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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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연이가 오랜만에 한국에 왔다. 당연히 봐야지, 하고는 어디서 볼까 하다가 마침 연락이 온 전시도 있고 해서, 경리단길에 갔다. 사실 '경리단길'에서 커피를 마신다는 늦은 오후의 약속은 내겐 거의 벌어지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전에 갔던 카페를 생각했는데, 가격이 요즘 커피숍들을 생각하면 좀 비싼 편이었지만, 언덕 아래 숱한 가게들보다 현저히 낮은 인구 밀도와 앉아 있으면 그나마 시원한 바람은 괜찮았다. 쨍한 햇볕도.


Seoul, S.Korea
Fri, June 23, 2017

창원이도 조금 있다가 도착했는데, 이탈리아 스타일로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언젠가 코듀로이 소재 슈프림 Supreme캠프 모자 camp cap가 사고 싶을 때가 있었는데, 오랜만에 봤다.


박민하 Park Minha 작가님의 전시에 간다고, 인기가 연락해서 애들과 함께 가보기로 했다. 민하 씨 전시는 초대할 때마다 방문을 못 하는 바람에 마음에 짐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능동적으로 향했다. 천천히 비눗방울을 내뿜는 설치 작품과 불이 들어오는 작은 도자기 설치 작품들, 그리고 각기 다른 캔버스에 그린 회화 작업이 한자리에 모였다. 민하 씨의 '회화'작업을, 처음 그의 작업실에 방문했을 때부터 참 좋아했다. 수년이 지난 후 가장 최근 작업들은 내가 처음 보았을 때와 여러모로 달라졌지만, 여전히 좋다.


이런 대형 회화도 있다.


전시가 열린 휘슬 Whistle이라는 공간은 경리단길 초입에서 가깝다. 1층에는 공유가 모델인 패션 브랜드가 있어서, 매장 안에 놓은 등신대 마네킹과 사진 찍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제법 보였다. 

박민하 개인전: 서울시 용산구 회나무로 13길 12 3층 '휘슬' (02 794 4775)


혜진이가 만드는 공간 '아웃 오브 오피스 Out Of Office'웹사이트 미팅에 참여하고, <더 네이비 매거진 The NAVY Magazine> 관련 얘기도 강의처럼 듣고는, 다시 인기와 창원이를 만났다. 소주와 소맥 마는 셋이 만나면 가는 술집이야 뻔한데, 그 뻔함에 변주를 주고 싶어서 '으악새'에 갔다. 청담동에서 괜찮은 가게다. 결국 뻔한 가게였지만.



지환이 연락을 받고, 우리는 다시 광명수산에 갔다. 지환이의 진한 눈빛이 더 진해졌다(사랑의 힘인가). 술은 당분간 안 마시려고 하지만, 혹시 마시더라도 허구한 날 가던 가게들은 당분간 안녕, 하기로 혼자 마음먹었다.


photograph by Hong Sukwoo

에어팟 AirPods _ Wed, December 2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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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팟 AirPods을 샀다. 지난 13일, 출시되었다는 기사를 본 밤에 바로 애플 웹사이트에서 '질렀다'.

아이폰 iPhone은 6S를 쓰고 있어서 바꿀 주기가 아니고, 애플워치 Apple Watch도 1세대로 만족스럽게 사용 중이며 터치바를 단 맥북 프로 MacBook Pro도 신기했으나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올해 이미 두 대의 맥북을 샀고).

정말로 기다린 건 바로 에어팟이었다. 담배라든지 콩나물 자루라든지, 샤워기라고 사람들이 비아냥거려도, 끈 없는 다른 블루투스 이어폰의 선택지가 아무리 넓어도 애플에 기어코 끌리고 마는 심각한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

1년 전, 혜진이가 선물로 준 소니 블루투스 이어폰은 넥밴드 타입이고 운동용으로 특화했으며 색도 청록색이지만 올해 가장 잘 쓴 물건 중 하나일 정도로 만족도가 높다. 인이어 형태는 도무지 불편하고 개방형을 좋아하는 취향도 크다. 애플이 번들로 주는 '이어팟 EarPods'은 훌륭한 가격대와 성능의 이어폰이긴 해도, 소니 무선 이어폰을 쓰고 난 이래 종종 쓸 일이 생기면 그렇게 성가시고 불편할 수가 없었다. 그 '선'때문에, 또 그 선이 꼬인 걸 주머니에서 꺼내 풀고 있는 게 말이다.

에어팟은 주문하고서 정확히 일주일 만에 도착했다(그사이 무수하게 애플과 DHL 웹사이트의 배송 추적을 눌러댔다). 마침 아무도 없을 때 도착한 에어팟을 받기 위하여, 점심과 오후로 이어진 미팅을 마치고 어느 때보다 서둘러 집에 갔다. 아파트 경비실 택배 보관소에 담긴 작고 가벼운 상자가 두근, 하고 마음을 쳤다. 가위로 조심스럽게 포장을 뜯고, 유튜브 영상과 리뷰 글로 수없이 본 '페어링'과정을 의식처럼 거치고서는 귀에 안착한 에어팟으로 음악을 들었다. 미래에서 온 첨단 기기라기엔 선이 없다는 것만 빼면 그저 유려한 곡선으로 이뤄진 작고 가벼운 이어폰일 뿐이다. 아직 좀 생경하다.

과연 시간이 지난 후에도 적응은 할까 싶은 '착용'모습에, 거울을 보고 귀에 달린 흰 막대기에, (아직) 어색하고 뭔가 조금 허탈한 기분도 들었지만, 맥북과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이어지며 하루에도 몇 번이나 듣는 기기를 바꾸는 내게 꽤 좋은 선택이었다고 세뇌한다.

W1 칩이라는 애플의 무선 신기술이 들어갔는데, 이 칩은 동일한 아이클라우드 iCloud 계정으로 등록한 기기들 - 맥북, 애플워치와 아이폰, 아이패드 등 - 로 에어팟을 사용할 때 설정 한 번으로 편하게 바꿔준다. 맥북과 아이폰은 합격점이었는데 유독 지연 증상이 있던 게 아이패드였는데, 산 지 3년이 진작 넘은 구세대 제품이라 그런가 싶다.

음질은 나보다 더 전문가들이 알려주겠지만, 이어팟 정도는 충분히 한다. 소니 무선 이어폰도 나쁜 음색이 아니었고 충분히 만족했다. 다만 거슬리는 몇 가지도 있다. 

페어링 과정이나 잠시 아무런 음악이 나오지 않을 때 미세하게 불투명한 전자음, 사람들이 화이트 노이즈로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소니 이어폰에는 없던 증상이다. 또한, 이틀간 사용하면서 전화 통화를 기다릴 때 두어 번, 노래를 듣다 두어 번 정도 페어링이 갑자기 끊어진 적이 있다. 일단 '기기 지우기'를 택하고 다시 연결한 후 조금 더 써보려고 한다.

선이 없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기가 주는 장점이나 잡다한 이야기를 더 쓰려면 아무래도 일주일 이상은 써보고 감회를 밝히는 게 낫겠다 싶어, 지금은 그저 첫인상 정도를 남긴다.



Seoul, S.Korea
Wed, December 21, 2016

AirPods


photographs by Hong Sukwoo

Balenciaga by Demna Gvasalia, Jersey fuseau p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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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가 Balenciaga 2016년 가을/겨울 여성용 기성복 컬렉션 중 하나, 조깅 팬츠 Jogging pants. 정식 이름은 '저지 퓌조 팬츠 Jersey fuseau pants'.

솔직히 '아니 무슨 츄리닝 바지가 90만 원대…?!'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파리 발렌시아가 플래그십 매장에서 보니 그럴 만했다. 뻣뻣이 각을 세우는 비스코스 혼방 소재는 당당해 보이고, 80년대 에어로빅 레깅스를 연상하게 하는 발끝 지퍼와 마감은 훌륭하다는 칭찬이 절로 나올 정도로 현대적이다. 꽃무늬 드레스부터 어마어마한 트렌치코트까지 강렬한 외투와 웃옷이 많았는데 어쩐지 가장 기억에 남은 건 바로 이 바지였다.

'뎀나 바잘리아 Demna Gvasalia'는 특유의 스트리트웨어 이미지로 과도하게 소비되고 있으나, 탁월한 고급 기성복을 꾸준히 만들어낸 하우스의 기술력이 그의 창조를 든든하게 받쳐준다.


[The Article] 사운드트랙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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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 21
마감인간의 MUSIC

< 라라 랜드 La La Land> 사운드트랙 (2016)

2016년이 끝나기 사흘 전 <라라 랜드>를 봤다. 워낙 요즘 많은 입소문이 나는 영화인 데다 <위플래쉬 Whiplash, 2014> 역시 그해 본 최고의 영화 중 하나였기에 기대했다. 평일 오후임에도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반대로 그래서인지 인터넷에 오른 어떤 정보 하나도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다.

스포일러 없는 정도로 소감을 밝히면, 이 영화는 2016년에 본 영화와 드라마 시리즈 중 개인적으로 최고의 한편이었다. 어떤 영화는 감상 후 '여운을 곱씹을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딱 그런 느낌이랄까. ‘뮤지컬 영화’를 표방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오리지널사운드트랙 또한 인상적이었다.

데이미언 셔젤 Damien Chazelle감독의 전작 <위플래쉬>는 사실적일 수 있는 음악 청년과 교수의 상황을 극단적인 감정과 호흡을 따라 한정된 공간을 오가며 찍은, 세밀한 열정이 핏방울처럼 뚝뚝 떨어지는 음악 영화였다. 양극단만큼 다르다고 해도 무방한 <라라 랜드>는 할리우드 황금기 혹은 뮤지컬 영화 고전들이 생각나는 매력이 곳곳에 깔렸다.

영화의 특정한 부분들 혹은 줄거리가 하나의 틀에 박힌 표현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감독은 고작 세 번째 장편 영화이자 세계적인 호평을 받은 두 번째 ‘음악 영화’에서 이후 더 좋은 배우들과 조금 더 늘어난 자본력, 연출에 더 자신이 붙은 삼박자가 만나 절묘한 황금비를 창출했다. 영화 곳곳의 뮤지컬 ‘클리셰’들은 사실 과거, 아름다움과 희망과 두근거림을 함께 주었던 모든 음악과 뮤지컬 영화를 향한 헌사처럼 보였다(심지어 영화를 보고 흐르는 제작진 소개 자막까지 말이다).

영화의 큰 축을 차지하는 두 주연 배우, 라이언 고슬링 Ryan Gosling과 엠마 스톤 Emma Stone이 서로 다른 성향을 띠며, 뮤지컬 곡들과 재즈 Jazz가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가 다시 만나는 호흡도 극 중 상황과 맞물려 부드럽게 돌아간다.

엠마 스톤이 부르는 ‘Auditon(The Fools Who Dream)’은 그가 처한 현실과 미래의 꿈을 절묘하게 묘사하는 솔로 넘버다. 로스앤젤레스 Los Angeles라는 배경을 마치 현실과 비일상의 경계로 보이도록 탁월하게 살린 영상미는 라이언 고슬링이 부른 ‘City of Stars’와 잘 들어맞는다. 본격적이라기엔 부족해도, ‘재즈’가 지닌 시대의 향수를 좋아하는 관객들이라면 남자 주인공의 열정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때마침 배경에 깔리는 연주곡 ‘Summer Montage / Madeline’도 화려한 계절의 햇살이 느껴질 만큼 훌륭하다.

칭찬만 구구절절 늘어놨는데, 사실 개인적으로 '뮤지컬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편협하고 사소한 몇 가지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을 들추면, 진지하게 이야기하다 갑자기 노래로 바뀌고, 다시 천연덕스럽게 정극 연기를 펼치는 상황에 '감정 이입'이 되지 않은 탓이었다.

<라라 랜드>는 그 이야기만으로는 특별할 게 없어 보이지만 - 연말에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사랑 이야기를 생각해보시라 - 어쩐지 마음을 치는 울림이 있었다. '별이 많은 도시'가 주는 상징성과 선남선녀 주인공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작부터 비현실적으로 느낄지언정, 둘이 만났다가 진전하고 다시 소홀해졌다가 봉합하며, 다시금 대단원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더 어린 시절 연애를 했던, 내가 기억하였던 나였다면 느끼지 못했을 공감대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혹시라도 이 글을 보고 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한 독자분이 있다면, 먼저 OST를 듣지 마시고 영화를 본 당일, 직후 OST를 차분히 들어보길 권한다. 여운이 남은 영화를 다시 음미하는 아주 좋은 방법인데, 이 영화에는 특히 잘 맞는다.



영화 전문 잡지 <씨네21 Cine21>에 한 달에 한 번씩 쓰는 '음반'추천 글, '마감인간의 MUSIC'입니다. 영화 <라라랜드> OST를 추천한 이번 글은, 2017년도 1월 19일자에 실렸습니다. 위에 올린 글은 지면에 편집하여 들어가기 전의 원글입니다.

I wrote an article about recommended an album that named 'Music of Magam Ingan(which means 'the deadline man' in Korean)' to <Cine21>. I suggested original soundtrack of <La La Land> at this time.


Written by Hong Sukwoo 홍석우
Fashion Journalist, <The NAVY Magazine> Editor/ Fashion Director.

서울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패션 저널리스트이자 컨설턴트, 수필가인 홍석우는 패션 바이어와 스타일리스트, 강사 등을 거쳐 미국 스타일닷컴 Style.com컨트리뷰팅 에디터와 서울의 지역 문화를 다룬 계간지 <스펙트럼 spectrum>과 <어반라이크 Urbänlike> 편집장 등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서울의 거리 사진을 올리는 블로그 ‘yourboyhood.com’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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